in 일상 끄적끄적

만 16년 사회생활을 돌아보며.

지난 12월 4일 내가 사회생활을 한 지 벌써 만 16년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문득 만 16년 사회생활을 어떻게 지냈는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웹 마스터로 시작한 사회생활 (2001 – 2007)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관련 학과로 가고 싶었지만, 성적에 맞춰서 학과를 선택하다 보니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웹 마스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관련 일을 하기 위해 여러 군데 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 시기였다. 다른 친구들은 이미 졸업하여 취업했고 나는 사정상 1년 휴학을 했으니 2001년이 지나기 전에 꼭 취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력서에 쓸 내용이 별로 없으니 나름 포트폴리오 사이트도 만들고, 전자상거래 관리사 2급 자격증도 땄다. 이력서보다 자기소개서에 더 공을 들였다. 전공무관, 경력무관, 신입…이런 구인공고가 보이면 무조건 지원을 했다. 하지만 면접까지 이어진 적은 별로 없었다. 약 반 년 동안 취업이 되지 않으니 너무 힘들어서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때 가장 많은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을까 싶다.

혹시나 해서 데브잡이라는 곳에 이력서를 올렸었는데 그 이력서를 보고 신생 벤처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가서 회사 규모가 너무 작아 실망했지만 일단 경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까지 해서 사이트를 만들었지만 만들자마자 윗분들이 맘에 들어 하지 않아 다시 만들라 해서 사수를 붙잡고 술 마시며 마구 울었던 기억이 난다. 신입의 나는 의욕은 많았지만, 이래저래 실수가 잦았던 사람이었다. 2년 9개월 동안 참 잘 다녔다. 첫 회사는 지금 꽤 큰 규모의 원격지원 회사로 성장했다. 아마 내가 잘 버티고 있었으면 그래도 한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후회도 되지만 나와 첫 회사의 인연은 딱 그 만큼이었을 것이다.

첫 회사를 오래 다닌 덕에 두 번째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경제경영 출판사의 웹 마스터로 취업하였고 여길 다니면서 리눅스 서버, mysql, php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 회사는 판권에 전 직원의 이름을 적어주는데 지금도 가끔 내 이름이 찍힌 책을 보면 반갑다. 이 회사는 1년 정도 다니고 헤드헌팅을 통해 대기업 규모의 출판사로 이직하였다. 이 회사의 웹 마스터는 출간되는 모든 책을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내 책이 꽤 많이 늘었다. 좀 더 오래 다니고 싶었지만 계약만료로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다.

웹 퍼블리셔로 직종 전환 (2007 – 2012)

웹 마스터로 있을 때 PSD를 html로 바꾸는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수였던 과장님이 개발자가 작업하기 편하게 잘 만들어줬다는 칭찬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html 코더로 일을 하기로 했다. 웹 마스터는 기획, 디자인, 개발, 서버 세팅 등 너무 다양한 것을 다루다보니 조금은 나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전 출판사에서 계약만료 된 후 약 6개월을 쉬었지만 생활이 가능했던 것이 실업급여도 있었지만 중간중간 아르바이트로 html 코딩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모 취업포털 웹 퍼블리셔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고 합격하게 되었다. 웹 표준, 웹 접근성이라는 것을 몰라서 이것들을 익히기 위해 관련 도서라고 생각하면 그냥 다 샀다. 그리고 무조건 봤다. 알 때까지 봤다. 관련 커뮤니티는 다 찾아서 가입하고, 관련 강좌도 찾아서 들었다. 그렇게 넉 달을 하니 회사 메인 사이트 개편 마크업을 하게 되었다.

취업 포털을 나와 잠시 관공서 프로젝트 PM으로 일하다가 다시 웹 퍼블리셔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헤드헌터가 나에게 같은 회사를 지원하라고 연락이 왔었다. 다 무시했더니 그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직접 연락이 왔다. 왠지 이번에는 지원해도 될 듯싶어 지원했다. 서류통과하고 1차 실무자 면접 통과하고 2차 임원진 면접을 보았는데 처음으로 압박면접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 당연히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는데 합격했다. 이 회사가 가장 내 사회생활에서 재밌었던 회사였다. 이때 내가 가장 나의 능력을 잘 펼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회사도 내가 입사하고 2년 후에 희망퇴직을 받았다. 회사 규모를 축소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생겼다.

또 6개월을 쉬니 생활비가 슬슬 필요하게 되어 프리랜서로 모 자동차 회사 사이트 개편, 모 모바일 콘텐츠 관련 회사 소개 페이지 개편, 모바일 페이지 마크업 등을 하게 되었다. 프리랜서로 살다 보니 뭔가 불합리한 일을 겪게 되어 다시 안정적인 회사를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회사가 동영상 공유 서비스 회사였다. 사실 웹 퍼블리셔까지 필요한 규모의 회사가 아녀서 일이 너무 없었다. 나에게 맥 버전 앱 기획이나 마케팅 관련 업무도 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을 하는 게 맞나 싶어서 또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들어온 곳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다. 웹 퍼블리셔는 없었고 디자이너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잘 키워서 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있었다.

암흑의 육아휴직, 복귀 (2013-2014)

그런데 팀을 막 만들려고 할 때쯤 내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딱 반년만 쉬고 복귀하려고 했지만,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구하기 너무 힘들었다. 어쩔 수 없이 3개월을 더 쉬게 되었는데 이 덕분에 팀을 만들 기회를 놓쳤다. 아직 어린아이를 맡기고 일을 하다 보니 죄책감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갈등도 많았던 시기였다. 막상 복귀하니 내 실력과 감이 많이 떨어져서 그것 또한 너무 힘들었다. 아이도 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다 보니 힘들었던 시기였다.

프론트엔드개발자로 발전 (2014 – 현재 진행형)

팀의 이름이 프론트엔드개발팀이다보니 자바스크립트 관련된 부분도 다뤄야했다. 나의 경우는 자바스크립트가 항상 아킬레스건이었다. 마크업은 잘 할 수 있지만, 왠지 자바스크립트라는 이름만 들으면 머리가 아프고 압도감을 느꼈다. 남들이 보기엔 위축된 것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내가 관심 있는 내용의 세미나가 있으면 무조건 참석하였다. 스터디가 있으면 시간을 내서 참석하였다. 물론 이것은 남편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배운 것을 배운 것으로 끝내지 않고 사내에 공유하고, 서비스에 적용하고 시행착오를 또다시 공유하였다. 덕분에 올해는 나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좋은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그래서 만 16년간 얻은게 무엇일까?

내 사회생활 16년을 돌아보니 내가 정말 힘들어서 더 내려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그 시기는 위기가 아녔다. 오히려 다른 길을 열어 준 계기였다.

처음 계약만료가 되었을 때 웹 퍼블리셔라는 다른 직종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육아휴직으로 쉬고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고 나 역시 더 나태해지면 안 되겠다 생각하여 더 열심히 나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게 되었다.

점 하나라고 생각한 것이 모이면 선이 된다. 의미 없다고 생각한 순간순간이 나중에 몇 년이 지나면 정말 큰 변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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